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작년의 일이다. 사무실에 출근했는데, 에어팟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나, 팟캐스트 같은 것들을 항상 틀어서 귀에 꽂아두고 일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점심 시간에 '아성다이소는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며 유선 이어폰을 사러 갔었다. 내 아이폰은 구형이라 C타입을 사용하지 않는 모델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라이트닝' 젠더에 호환되는 모델을 찾았다.
문제의 이어폰을 사용하려고 보니 아주 열받는재미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유선 연결을 통해 이어폰에 전원을 공급하고, 정작 이어폰과 휴대전화는 블루투스 연결을 해야만 소리가 나왔다. 그야말로 아나디지의 느낌이었다. 물론 유선 이어폰이라고 아날로그는 아니지만, 뭔가 유선의 단점과 블루투스의 단점을 조합해서 만든 것 같은 이어폰이었다.
블루투스의 장점인 무선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잃은데다가 유선의 장점인 낮은 지연속도도 잃었다. 두 가지 방식을 결합했지만, 두 가지 방식의 단점이 같이 결합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 해결 방법이 우수한 해결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내가 시간에 쫒겨 급하게 스펙만 맞추어 만들어 낸 feature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feature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legacy를 제거하고, 클린한 코드를 만들고 하는 것들이 가장 우선 순위가 될 수 없고, 약속된 기간 내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주는' 코드를 작성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엔지니어링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생각하는 엔지니어링' 이라는 주제의 글도 언젠가 더 자세히 작성해보면 좋겠다).
그럼 '그 이어폰'을 만들어 낸 제조사가 마주친 어려움은 뭐였을까? 까다로운 아이폰의 인증 절차라던지 뭐 그런 것일 수 있겠다. 여러가지 비용을 계산해 봤을 때 지금 같은 형태로 만드는 것이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었겠지(그렇게 믿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시장은 냉정하다. 내가 아무리 주어진 제약 내에서 예술적인 재분배를 통해 artistic한 외줄타기를 성공해냈다고 한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의 썩은 사용성이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난 샀지..
어떤 식으로든 이 이어폰의 존재 의의를 더해주는 행위를 저질러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날 하루는 어떻게든 귀에 소리를 집어넣을 수 있었으니 존재 의의가 있긴 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좀 무책임한 것 같지만.
다 쓰고 보니 제목이 왜 저 모양인지 까먹었다.


